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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언제든 끊을 수 있다고? 그건 알콜중독자들 착각! 가족과 자신을 위해 재활병원에 가야합니다

▶ 알코올 중독, 질병으로 접근을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술, 언제든 끊을 수 있다고? 그건 알콜중독자들 착각! 가족과 자신을 위해 재활병원에 가야합니다


■대화

 

아빠는 늘 ‘내가 마음만 먹으면 술은 언제라도 끊을 수 있어’ 라고 얘기하셨어요. 엄마도 ‘당신이 술만 끊으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어요’ 라고 하셨고요. 제가 오랜 시간 중독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건 모든 중독자들의 합리화이고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빠는 그 시간에 재활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어야 했어요.”

 

▶ 제가 만나본 중독자들도 대부분 같은 말을 했어요. 그러나 스스로 끊은 사람은 없었죠. 중독의 늪에서 나오려면 자신의 문제를 시인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해요.

 

중독자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지옥을 경험하는 거예요. 가장 힘든 것은 불안감이에요. ‘오늘 집에 돌아가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나 있을까’, ‘아빠가 술을 마시면 엄마를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지 않을까’, ‘친구들이 아빠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늘 저를 사로잡았죠. 저는 한 번도 집에 친구를 데리고 간 적이 없었어요. 친구들이 볼까봐 남의 집을 우리집인 것처럼 들어가려고도 했어요.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밝은 척, 똑똑한 척 했어요. 나를 포장하는 게 참 버거웠어요.

 

▶ 아빠와 동일시되면서 느낀 감정들이죠. 엄마가 보호막이 되어 주시지 못했나요?

 

“엄마는 자신의 괴로움을 철야기도를 하면서 푸셨어요. 아빠랑 크게 싸우시거나 아빠가 사고를 내시기라도 하면 아예 기도원에 가서 사셨고, 심지어 30일씩 금식을 하시기도 했어요. 저는 방치 되었었죠. 알코올 중독자 아내들이 잘못 판단하는 것은 남편이 알코올을 약간 섭취해서 기분이 좋을 때 설득하려는 것이에요. 저희 엄마도 그러셨어요. 아빠가 술을 약간 마시고나면 기분이 좋아지시거든요. 엄마는 ‘이 때다’ 싶어서 잔소리를 시작하세요. 그러나 결과는 아빠가 폭음하게 되시고, 싸우게 되시고, 폭력까지 일어나는 것이었죠.”

 

▶ 술 취한 아빠, 맞는 엄마. 부모님 싸움을 보는 게 참 힘드셨겠어요.

 

중독자 아이들은 두 가지 패턴으로 나뉘어요. 어떤 아이들은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어떤 아이들은 자포자기 해버리죠. 다행히 저는 전자였어요. 그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다행히 성적이 좋았고, 명문대에도 합격했어요.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엄마가 제게 본격적으로 의지하기 시작하셨어요. 모든 어려움과 마음의 고민을 제게 의논하셨고 제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셨어요. 겨우 스무 살인 제가 엄마의 유일한 희망이자 멘토이자 우상이 되어 버린 거죠. 버거웠어요. 생각해보니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저를 의지하셨네요. 아빠가 술이 취해 돌아올 때면 열 살된 제 손을 꽉 잡으시곤 했어요. 심지어 중·고등학교 때는 아빠의 외도를 의심했던 엄마가 10대의 딸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말아야하는 것들까지 얘기하시기도 했어요. 의지할 곳 없는 엄마를 이해했지만 저는 내면의 상처를 입었어요. 엄마는 제가 잠시 해외에 나가 있던 기간에 옥상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아빠는 술에 취해 있으셔서 엄마가 집안에 안들어온 것도 몰랐고 엄마는 밤새 옥상에 방치되셨다가 결국 깨어나지 못하셨어요.”

 

▶ 어릴 때부터 가족의 해결사가 돼야 했다니 너무 안쓰럽네요.

 

“대학을 졸업한 후 중독에 대해서 오랫동안 공부를 했어요. 지금은 여러 곳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고요. 이런 제가 심하게 불안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얼 하는지 아세요? 숨어서 무엇인가를 먹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후다닥 먹어치우죠. 그러고 나면 마음이 좀 가라앉아요.

아빠의 모습과 똑같아요. 아빠는 평생 몰래 술을 마셨어요. 아빠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셨고, 똑똑하신 분이셨어요. 그렇게도 싫어했던 아빠의 모습을 제가 따라 하더라고요. 중독자 가정에서 자라면 후유증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저는 문제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하기 버거운 것들이 아직도 있어요.”

 

▶ 충분히 이해가 돼요. 제가 만난 알코올 중독자 자녀 중에도 섭식장애를 호소한 분이 있었어요. 불안한 마음이 들면 폭식하고, 그런 자신을 증오하면서 다 게워내곤 했죠. 가족으로부터 떠나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못하는 무의식적 갈등에서 기인한 행동이었어요.

 

“아빠가 얼마 전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 10년 동안의 시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어요. 알코올 중독자이시니 요양원에서도 안받아주고요. 결국 제 집 근처에 원룸을 얻어드리고 제가 돌보았죠. 남편에게 무척 미안했어요.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마음이 시원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아픈 시간의 뚜껑이 덮히는 기분이었어요. 이제 아빠가 편안하시기를 바랄 뿐이에요.”

 

▶ 오랜 시간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이제는 좀 편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제언

 

알코올 중독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많은 고통과 상처를 준다. 그래서 ‘가족의 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알코올 중독자의 가족은 밤낮으로 불안과 공포를 느끼면서 분노와 죄의식을 겪게 된다.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중독의 문제를 가족들만의 비밀로 억압시키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진다. 중독자의 아이들이 수면장애, 섭식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등 여러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는 연구가 적지 않다.

 

오늘의 주인공 수진씨(가명)는 생애 초기부터 알코올 중독자 자녀이면서 보호자였고, 현재는 알코올 중독자 가족을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중독자 가족에게 두 가지를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첫째, ‘술만 끊으면 다 해결될 거야’ 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것은 허상이고 비합리적인 신념이다. 이런 생각에 빠져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면 만성적인 중독자 가족의 형태로 가게 되는 것이니 이런 생각을 끊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둘째, 중독자의 삶과 나의 삶을 분리해야 한다.

그가 불쌍해서, 사랑해서, 미워해서 그와 동일시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의 가족이지만, 그 전에 내 삶의 주인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 않으면 결국 다 같이 침몰한다.

필자 역시 각종 중독의 문제를 지닌 이들을 여러 명 만나 왔다. 중독자가 된 원인은 모두 달랐다. 어떤 사람은 외로워서, 어떤 사람은 불안해서, 또 어떤 사람은 호기심에 손을 댔다가 중독이 됐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원인과 양상은 달랐다고 해도 정식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결국 그들의 개인적, 사회적 삶이 피폐화된다는 사실이 같았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술에 관대하다. 술로 인한 문제가 생겨도 가정 안에서는 개인적 문제로, 가정 밖에서는 순간의 실수라고 이해해 주곤 한다. 이런 문화 속에서 알코올 중독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진화한다. 중독자는 술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 점점 더 많은 양을 마시게 된다. 이미 중독의 상태로 들어간 경우 술의 양을 점진적으로 줄여서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수준으로 그 양을 제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힘이 들어도 술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 알코올 중독은 질병으로 접근해야 치료될 수 있다.

 

“제가 어렸을 때 한 명만이라도 ‘너는 잘못이 없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 라고 얘기해 줬다면, 제가 그토록 힘들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그런데 단 한명도 그렇게 얘기해 주지 않더라고요.”

 

수진씨가 내게 나직이 건넸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중독자 자녀는 아무 잘못이 없다. 상처받은 그들에게는 지지와 배려,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 중독자 가족이 힘을 얻고 용기를 내야 중독이라는 괴물로부터 중독자도, 가족도 모두 지켜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보를 하나 전한다. 알코올 중독자거나 가족에게는 자조집단이 매우 중요하다. 중독자 가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알아넌(Al-anon)을 주의 깊게 살펴보기를 권하고 싶다(www.alanonkorea.or.kr). 알아넌은 현재 131개국에서 수천 개의 알코올중독 가족 모임들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 위의 사례는 유튜브채널 ‘박상희의 심리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무료심리상담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에서 5월 16일부터 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 출처: 경향신문 라이프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 박상희(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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